안녕하신가요? 날씨도 그렇고 경제상황도 그렇고 어딘지 모르게 불안불안한 금요일, ixi를 담당하게 된 최수영입니다. 지난 월요일(6/20), SM에서 무려 17분에 달하는 SMCU(SM컬쳐유니버스) - 에스파 Ep2. 넥스트 레벨'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SM덕후가 아니라면 웬만한 항마력으로는 이 영상을 끝까지 보기 어렵다'는 반응에 오히려 호기심이 생겨 항마력 주사를 한 방 맞고 보기 시작했는데요. 약효 덕분인지 이번 영상을 포함하여 작년부터 본격화 된 SMCU, 이른바 '광야 세계관'에 나름 흥미로운 점을 보게 되어 오늘은 그 내용을 나누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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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광야'라는 단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우스개꺼리로 소비되는 모습으로 처음 접했습니다. 주로 SM 출신 연예인들을 괴롭히는 질문으로 많이 쓰이고 있죠. "그래서 광야가 뭐야? 넌 광야에 가봤어?" 등등. 그래서 언제부턴가 '광야'는 SM 성수동 신사옥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는가 보더군요.
이런 항마력 낮은 냉소들을 잠시 뒤로 치워두고 거의 30분에 달하는 SMCU 영상들(오리진, 에스파 Ep1, 에스파 Ep2)을 쭉 보게 되면 사실 이 설정은 그다지 괴상한 개념은 아닙니다. 가상현실/이세계를 다룰 때 흔히 쓰는 개념이죠.
SMCU라는 평행우주는 현실세계(리얼월드)와 플랫(가상세계, 혹은 미디어 세계)이 서로 연결되어 돌아가는데, 바로 이 연결을 가능케하는 '특별한 힘'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그래서 현실세계와 플랫의 연결이 끊기는 현상(싱크아웃)으로 세상이 혼란스러워지자, 에스파 멤버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광야'로 향하게 된다는 스토리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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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CU The Origin (출처: SMTown 유튜브 채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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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제 시선을 사로잡은 건 '광야' 보다 '플랫'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영상에서 3D 애니메이션으로 묘사되는 '플랫'은 '리얼월드' 사람들이 업로드한 각자에 대한 데이터들(SNS 사진/영상 등)로부터 독자적인 자의식을 형성한 'AE(아이라고 읽더군요)'들이 사는 세상입니다. 영화 '프리가이' 속 AI들이 살아가는 시뮬레이션 세상, 요즘 '가상존재(Virtual Being)' 기업을 표방하는 페이블(Fable)이 만든 가상존재들의 세계 '더 시뮬레이션(The Simulation)' 같은 곳이죠.
요즘 용어로 치면 이곳이 3D 온라인 세상, 즉 '메타버스'일텐데, 메타버스 지지자들이 기존 2D 영상 중심의 미디어 플랫폼을 자신들과 구별할 때 쓰는 '플랫'이라는 용어를 그들에게 돌려주는 식으로 썼다는 게 재밌었습니다. (야, 니네도 플랫이야)
SMCU의 창작자들이 '플랫'이 평평한 스크린으로 재현되는 미디어 월드를 뜻한다는 걸 알고 의도적으로 이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SMCU가 '플랫'이라는 개념을 우선 설정한 뒤, 다시 그걸 뛰어넘는 개념으로서 '광야'를 제시한다는 지점에서 이 분들 야심이 상당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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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CU 설정에 따르면, 리얼월드와 플랫이 연결된 뒤 플랫의 AE들은 자신과 닮은 리얼월드의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블랙맘바'(아직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가 의도적인 싱크아웃(연결해제)을 유도하기 전까지는요.
하지만 싱크아웃이 된 이후 '광야'에서 다시 만나게 된 AE들은 다른 욕망을 드러냅니다. 즉, AE는 리얼월드의 '인간'이 원하는 이상적인 이미지들로 형성된 존재기 때문에 더 우월하고, 결국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AE가 선택되는 게 맞다고 얘기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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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시간이 지나면 변하겠지. 하지만 난 항상 완벽한 모습일거야. 사람들이 둘 중에 누굴 좋아할까?" - 에스파 Ep2.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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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 'ep1. Black Mamba' (출처: Aespa 유튜브 채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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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이야기를 다름 아닌 SM이 꺼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습니다. AE의 이야기는 사실 요즘 '버추얼 아이돌'의 사업적 장점을 언급할 때 늘 나오는 내용이거든요. 늙지 않고, 스캔들도 없고, 멘탈도 흔들리지 않고, 아무리 일을 시켜도 지치지 않는 존재로서의 버추얼 아이돌. SM 역시 그런 존재를 필요로 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주장을 '블랙맘바의 유혹'으로 설정해 두다니요. 아무리 약하더라도 그래도 인간인 게 좋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안 그래도 BTS의 활동 중단 선언을 계기로 '인간으로서의 아이돌이 가진 고됨'에 대해 많은 논의가 나오는 시점인데, 만약 이 문제를 SMCU를 통해 좀 더 진지하게 다룰 의향도 있는지도 궁금해지더군요. 넷플릭스의 '블랙미러' 시리즈나 '러브 데스+로봇' 시리즈에서 다룰법한 주제가 될 지도 모르겠는데, 만약 그런 '다크함'까지 수용할 의사가 있다면 SMCU는 훨씬 더 흥미로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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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을 현실로 불러내는 대신, 픽션 속으로 들어가는 유니버스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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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 ‘ep2. Next Level’ (출처: Aespa 유튜브 채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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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즘 저도 실제현실과 가상/허구세계(혹은 또 다른 현실)을 연계시키는 이야기에 관여하고 있는지라, 이러한 시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관심이 가게 됩니다.
이수만 회장이 마블의 '스탠 리' 같은 존재라면, 결국 SMCU의 '케빈 파이기' 같은 존재는 누구인지, '루소 형제' 같은 존재는 누구인지가 궁금해지는 거죠. 그리고 그들이 어디서부터 아이디어를 키워나갔는지 궁금해지더군요. 사실 에스파의 가사들을 유심히 들어본 적은 없었는데 영상을 본 뒤 가사를 보니 싱크로율이 엄청나더군요.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는 음악을 만들기 전에 존재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음악을 만들어놓은 뒤 그걸 하나의 스토리로 풀어가는 과정에서 발전한 것일까요? (누구 비하인드 스토리 아시는 분은 저희에게 연락을)
요즘 세계관을 만들려는 시도는 대체적으로 허구의 캐릭터, 허구의 세계를 현실로 불러내는 형식을 취합니다. 마블이 그렇게 했고, 펭수, 빙그레우스도 마찬가지고, (아마도 에스파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줬을) K/DA 역시 그랬죠. 그래서 아마도 SMCU도 그런 방식을 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초능력을 가진 존재가 지구에서 활동(엑소)하거나, 플랫에서 살던 AE가 리얼월드로 넘어와 활동(에스파)한다는 식으로요.
하지만 저는 아이돌 기획사의 유니버스는 오히려 반대편에서 접근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이돌은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을 부각시킬 때 매력도가 상승하는 존재기도 하니까요. 허구의 존재가 현실로 나왔다는 설정이 아이돌의 매력을 부각시키는 데 반드시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에스파 역시 차가워 보이던 카리나나 윈터가 인간미를 보이던 지점부터 인기가 급상승한 측면도 있으니까요.
반대편의 접근이란, 현실 캐릭터를 허구로 들어가게 만드는 전략을 뜻합니다. 이를테면 '플랫에서 뛰쳐나온 아이돌'이 아니라, 그냥 SM 연습생이었는데 최초로 '플랫'을 통해 '광야'에 진입하게 된다는 설정이라던가요. 마치 '초콜릿 공장의 비밀'처럼 SM의 아이돌들은 원래 '플랫'과의 싱크를 통해 활동해 왔는데 그게 끊겼고 '에스파'라는 신입 연습생들이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같은 설정이었다면 어땠을까요? SM의 또 다른 아이돌이 참여했던 TV 프로그램 '대탈출'이나 '여고추리반' 같은 프로그램이 이미 현실 캐릭터가 픽션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닦아놨다는 점에서 SMCU, 혹은 광야도 비슷한 접근을 취했다면 좀 더 자연스럽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어쨌든 저는 SMCU의 세번째 에피소드도 기다려 볼 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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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메타버스 창시자 '닐 스티븐슨'의 스타트업 Lamina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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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를 현실로 가져오기, 반대로 현실을 허구로 가져가기는 사실 2010년대 XR/메타버스 신드롬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전에도 언급했지만 오큘러스의 등장, 그리고 페이스북의 '메타화'가 SF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죠. 이에 더해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만든 장본인 닐 스티븐슨의 최근 행보 역시 너무나 흥미로운 측면이 있습니다.
작년 10월, 페이스북이 '메타'로 이름을 바꿀 때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직접 발언했던 닐 스티븐슨은 며칠 전 '라미나 1(Lamina 1)'이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몇 년 전 매직립(MagicLeap)의 '최고 미래 책임자(Chief Futurist of MagicLeap)로 활동하던 것보다 훨씬 앞으로 나온 셈이죠. 이 회사에 최근 유니티를 떠난 토니 패리시가 CSO로 합류하고, 매직립과 하프라이프 개발에 참여했던 게임개발자가 붙은데다, 매직립의 창업자였던 로니 애보비츠도 '자문'역으로 힘을 보탠다고 선언하니 더욱 흥미로워졌습니다.
SF 소설가가 30년 전에 자신이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면서 만들어낸 개념을 유토피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목적으로 다시 쓰려는 이 시도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일단은, 저로써는 직접 등판해주신 것만으로도 참 감사할 따름입니다. 직접 만날 기회도 곧 찾아오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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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사명 변경 당시 닐 스티븐슨이 올렸던 트위터 포스팅 (출처 : 닐 스티븐슨 트위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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