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저희는 'VR 이머시브 연극'이라는 장르로 정부지원사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장 상업적이지 않은 이 분야에 왜 정부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일까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냥... 당장은 돈이 안 되지만 나중엔 돈이 될 수 있으니까... 라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초기 투자' 관점에서 그렇겠거니 생각한 정도였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미래 가치를 보고 초기 투자하는 건 굳이 정부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두 분께서 정부가 이런 (비상업) 연극을 지원하는 이유는 '성숙한 시민'을 길러내는 데 그러한 연극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으니 좀 더 책임감이 느껴지더군요. 우리가 지금 세상에 내놓으려는 작품이 공공재로서 기여할 수 있는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해봐야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한편, ixi가 관심을 갖는 주요 화두인 '인터랙티브'에 대한 논의도 있었는데요.
“관객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게 관객을 능동적으로 만드는 건 아니라는 거죠” ... “극장이나 미술관에서 ‘능동적’이 된들, 그게 모양새로만 나타나고 극장 바깥의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계속 수동적인 삶을 살면 무슨 소용이냐는 거죠. 아니, 진정한 고민 없이 스타일로만 상호작용하고 만다면, 도리어 관객을 수동적으로 만든다는 거죠” ... “그저 능동적인 소비자만 될 뿐인 거죠. 상호작용은 사실 자본주의가 제일 잘하는 거잖아요?” ... "인터랙티브가 아니라 인터패시브 연극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만나고 싶은 관객, 혹은 참여자는 그저 '능동적인 소비자'면 충분한가, 아니면 우리 역시 그 이상을 바라고 있는가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VR과 연극의 관계에 대한 논의도 나왔습니다. VR이 연극의 가장 고유한 차별성인 '현장성'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관점이었는데요.
“가상현실이 뜨거워지면서 ‘고글 안은 가상, 바깥 현실은 실재’라는 이분법적인 전제가 쉽게 통용이 되는데 그로부터 벗어난 현실과 감각의 관계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거죠” ... “현장성은 연극이 영화를 비롯한 다른 장르와 구별되는 독보적인 예술로 만드는 결정적 요소죠. 그런데 가상현실을 통해 증강현실이 가능해지고 시간여행이 가능해진 인류세의 변곡점에 진입한 지금, 우리는 연극을, 그리고 연극의 현장성을 새롭게 정의해야 할 시점에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9세기 말 무성영화의 시작이 연극무대였듯이, 이제 첨단 IT 시대 가상현실 게임을 비롯한 새로운 영상미디어 역시 연극성에 기반해 진척될 것입니다”
저 역시 VR을 쓰면서 '연극'으로부터 배울 게 있겠다 싶었던 건 연극이 현장성에 관심을 갖는 장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VR 경험 역시 '현장성'이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구요. 하지만 이 '현장성'은 반드시 물리적 현실의 현장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VR에서 이머시브 연극 연습을 하고 또 실제 공연을 통해 관객을 만나는 동안 저는 지금 이 경험은 현장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배우/관객과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있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경험적으로 그 모두가 한 공간에 있다고 느끼고 교감했던 것 또한 명백했거든요.
저도 어느 정도는 VR로 대표되는 새로운 미디어가 '연극성에 기반해 진척될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미디어의 진척이 기존 예술을 모두 집어삼킨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의미가 될 지 자본주의 시스템 내의 '신제품'으로 기능할 지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