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브라질 출신의 페드로 아헤스(Pedro Harres, 포르투갈어로 이 발음이 맞는 지 모르겠습니다) 감독의 첫번째 VR 연출작으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학교인 Filmuniversität Babelsberg KONRAD WOLF에서의 석사학위 논문을 겸하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무려 4년 동안 제작이 이루어졌고 14개 국적의 제작진들이 협업했다고 합니다. (아래 제작영상을 보시면 제작진들의 다양한 면면이 소개됩니다)
2D 펜 일러스트들을 3차원 공간에 모아 놓아 마치 종이인형 월드를 연상시키는 비주얼은 '귀엽다' '예쁘다'와 같은 첫 인상에 가깝지만 '이머시브 버젼의 "똑바로 살아라"를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 처럼 이 이야기는 결코 귀엽지만은 않습니다.
체험자(관객)은 중앙광장에 서 있게 되고, 그 주변으로 어떤 문명이 발전해 나갑니다.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의 마꼰도 같은 마을을 연상시킵니다. 처음에는 자연 속에 인간이 작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지만 이내 높은 건물이 올라가고 마을은 점점 복잡해집니다. 원주민과 이주민, 인간과 동물, 다양한 종교적 표현, 다양한 예술활동이 사방에서 펼쳐지다가 어느 순간, 사람들끼리 편 가르기가 시작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시작하고 반목과 분열의 골은 깊어지며 점점 더 잔인해 집니다. 그리고 당연히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다양성이 용인되던 광장이 증오로 가득한 전장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입니다. 어떤 사건이 시발점이 되었는지, 어떤 사건을 통해 분열이 확대 되었는지 파악하려면 작품을 여러 번 봐야 할 지도 모릅니다. 360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사건이 벌어지고 선후관계를 파악하기는 어렵거든요. 어떤 한 명의 악당, 어떤 하나의 원인이 있는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단 시작되면 분열과 반목과 증오는 끊임없이 커지고 결국 모두가 최후를 맞을 때까지 이어집니다. 그걸 막아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한에는요.
브라질에서 나고 자라 대학까지 마치고 독일로 유학 온 감독은 고국의 보르소나우 정권이 자행하는 분열과 반목의 조장을 지켜보면서 들었던 감정을 이 작품에 녹여내고 싶었다고 합니다. 하필이면, 바로 지난 주 그 보르소나우 정권은 무너지고 룰라가 브라질의 새 대통령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감독은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을 지 궁금합니다.
이 작품은 며칠 전 끝난 부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국제경쟁 부문으로 국내에 초청되기도 했었습니다.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알았다면 좀 더 일찍 볼 수 있었을텐데요. 어쨌든 11월 26일까지 온라인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으니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