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전세계 어떤 이머시브 페스티벌에서건 그 이름을 들을 수 있었던 영국 다크필드의 작품을 마침내 접하게 되었습니다. 패키지로 3편을 다 예매해 놓고 한 편을 놓쳐 <플라이트>와 <고스트쉽>만 경험할 수 있었지만요. (패키지를 샀다고 작품 감상시간이나 순서를 맘대로 고를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처음 예약한 시간을 놓치면 다시 볼 수 없게 된다는 걸 유의하셔요)
두 작품 모두 소리의 공간감이 엄청났습니다. 이게 헤드폰 성능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사운드 디자인을 잘 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어요. 헤드폰을 썼음에도 쓰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모든 소리가 헤드폰 바깥에서 나는 것 같아서 헤드폰이 고장인가 싶었는데, 막상 벗어보면 그 모든 소리가 헤드폰 안에서 들린 것이었음을 깨닫고 깜짝 놀랐습니다. <고스트쉽>에서는 등 뒤를 지나다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선명하다 못해 마치 숨결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고 <플라이트>에서는 그냥 비행기 안에서 눈을 감고 있을 때 경험 그 자체였습니다. 승무원이 지나다니고, 음료를 서비스하고, 쓰레기를 수거하는 그 모든 소리가 진짜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다크필드는 소리로 된 디지털 트윈을 만들겠다는 기획은 아니죠. 극도로 풍부한 소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완전한 암흑으로 시력을 차단하는 이유는 오직 소리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주겠다는 의도일 것입니다. 실제로 두 작품 모두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세계를 다룹니다. 초자연적인 영혼의 세계를요.
이 작품은 공포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할로윈 시즌과 꽤나 어울리죠. 하지만 정작 이 작품에서 소리는 우리에게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습니다. 노골적으로 거슬리는 소리도 없고 청력을 상실할 위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주변의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소리를 들려주고 속삭일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공포'를 느낀다면 그건 실은 우리 머릿 속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 때문입니다. <고스트쉽>에서 느끼는 공포의 상당 부분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손 때문이었습니다. 러닝타임 내내 주변을 맴도는 소리의 주인공이 무방비 상태로 놓인 손에 해를 끼치지 않을까 계속 신경쓰게 되죠. <플라이트> 역시 내가 앉아있는 이코노미 시트, 그 옆에 놓인 창문이 공포를 만듭니다. 거기서 뭔가가 튀어 나오거나 팔걸이에 놓인 내 손을, 내 등을 누군가 만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죠.
바로 이 공포라는 감각은 뭔가 확실하지 않을 때 더욱 활발하게 작동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스트쉽>에서 등 뒤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누군가가 나에게,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질문이 나의 대답을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압박감이 엄습해 왔습니다. 이거 대답을 해야 하는걸까 생각할 무렵 주변 다른 사람들의 답변이 들렸습니다. 그 답변이 연기자들의 목소리라는 걸 느낀 순간 갑자기 마음이 놓이더군요. 공포가 사라졌죠. 사운드의 공간감 덕분에 연출된 답변들은 실제 제 주변 관객들이 있을 법한 곳에서 들리긴 했습니다. 아마 제작진은 주변 관객들의 반응처럼 디자인된 소리들이 관객을 더욱 고립시키거나 공포스럽게 만들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경우, 나와 비슷한 관객들이 저렇게 반응할 리 없다는 확신이 들자 오히려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일종의 거리두기 효과로 작동했습니다. 그 순간 전 '감각을 너무 꽉 채우려는 시도가 오히려 상상력의 작동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게 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경험을 디자인할 때, 얼마나 실감나게 할까 보다 어떻게 관객의 상상력을 작동시킬까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도요.
때로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정적의 순간이, 비워놓은 사운드 트랙이 내 안의 공포를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