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그러니까 미국 시각으로는 4월 15일. 오큘러스의 창업자 팔머 러키(Palmer Luckey)는 자신의 블로그에 '오늘이 바로 오큘러스 탄생 10주년이 되는 날'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팔머 러키는 스무 살에 세운 오큘러스를 페이스북에 팔아 일약 VR계의 아이콘이 됐지만, 스물 다섯살 때 바로 그 페이스북으로부터 해고를 당했죠. (혹시나 이 5년 간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책 '더 히스토리 오브 더 퓨쳐'를 참조하시길) 그가 VR계를 떠나 5년을 더 보내고 서른 살이 되어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오큘러스(현 메타 리얼리티 랩스)라는 이름에 대해 드는 감회는 정말 남다를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오큘러스를 떠난 뒤 새로 창업한 안두릴(Anduril) 마저 유니콘으로 만들어내며 여전히 잘 나가고 있는 그를 제가 굳이 걱정해 줄 필요는 없죠. 하지만 여전히 오큘러스라는 이름이 메타 보다 익숙한 한 사람으로서 짧게나마 오큘러스의 지난 10년이 세상에 남긴 흔적들을 살짝 살펴볼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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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인수가격 20억 달러, 마침내 2021년 연매출이 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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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큘러스'라는 회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2014년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를 인수하며 지불한 20억 달러라는 금액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 당시 이 인수금액을 듣고 '싸게 잘 샀네' 했던 사람은 제 기억으로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들 'VR이 뭔데? 이게 그럴 일이야?'라는 반응이었죠.
그런데 얼마 전 메타(aka. 페이스북)는 메타의 XR 사업부문인 '리얼리티 랩스'(aka. 오큘러스)가 2021년 22.7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메타의 VR 헤드셋 '퀘스트 2'가 전작 '퀘스트 1' 대비 10배나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기 때문이었죠.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를 인수한 지 7년 만에 마침내 당시 인수금액 만큼을 연 매출로 벌어들이기 시작한 셈입니다. 물론 평가는 여전히 엇갈립니다. 이 7년이라는 시간이 기대보다 너무 늦은 거라 볼 수도 있고, 그 사이 페이스북이 추가적으로 투자한 비용까지 고려하면 이게 결코 돈을 벌기 시작했다는 사인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7년 전엔 누가 봐도 비현실적으로 보였던 숫자가 이제는 재무제표 상의 매출로 현실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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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간 기기 판매 뿐 아니라 콘텐츠 시장 역시 성장했죠. 지난 3월 끝난 GDC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퀘스트 스토어 내 소비자 누적 지출액은 10억 달러를 돌파했고 출시된 앱 중 약 30%에 달하는 124개의 앱이 매출 100만 달러를 넘었다고 합니다.
지난 3년 간 매출 100만 달러를 넘기는 앱의 숫자는 매년 늘고 있고 최상위 히트작의 상한선 역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2022년 2월 기준으로 그 전까지 없었던 2000만 달러 이상 매출작이 8개나 나왔다고 하죠. (그 8개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주변에서 'VR 콘텐츠를 만들면 어디에 팔 수 있나요'라는 이야기를 듣는 게 사실이지만 이미 소비자를 상대로 VR 앱을 팔아 돈을 버는 기업들 역시 명백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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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 간 XR 분야의 흥망성쇠를 지켜 봤다는 IT 컨설턴트 Avi Bar-Zeev라는 분은 며칠 전 본인의 미디엄에 '메타버스 하이프 사이클'이라는 그림을 소개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이미 1990년대에 등장한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라는 기술적 개념을 일반인들에게 쉽게 소개하기 위해 몇몇 유행어들이 시대에 따라 등장했다 사라짐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1990년대 '정보 고속도로', 2000년대 '사이버 스페이스' 그리고 뒤를 이어 '가상현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작년부터 유행한 '메타버스'까지.
하지만 그는 메타버스가 지금의 '인터넷'처럼 사회에 완전히 안착한 개념어가 될 것 같지는 않다고 합니다. 결국 비슷한 개념을 설명하는 또 다른 유행어가 머지 않은 시기에 나오게 될 거라는 거죠. 2024년 쯤, 혹은 2026년 쯤에요.
그런데 이 그림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세로 축입니다. 매번 새로운 유행어가 등장할 때마다 비슷한 파급력을 갖는 게 아니라 그 유행어들이 점점 더 큰 파급력을 가져 오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저도 지난 몇 년을 돌이켜 볼 때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XR이 잠깐 주목을 받다 이내 차갑게 식는 패턴이 반복되는 데 그 과정에서 조금씩 조금씩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측면에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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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신드롬'이 이제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모양새가 되면서 곳곳에서 모든 걸 싸잡아 메타버스라 부르는 풍조를 비웃거나 냉소하는 경향도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듯 합니다. '넓게 보면 테이저 건을 쓰는 것도 메타버스다'라는 아래 '짤'도 그런 요즘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 '메타버스'라고 불리는 변화의 가장 본질적 측면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도 점점 확실해지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수용되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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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지난 10년 간 변화의 속도는 기대보다 더뎠을 지 몰라도 변화의 방향성 만큼은 무척이나 일관됐었구나 느끼게 됩니다. 세상은 조금씩 조금씩 그러나 한결같이 온라인/미디어 경험이 우리의 물리적 현실 경험과 같아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걸 공간 컴퓨팅이라 부르던, XR 이라 부르던, 메타버스라 부르던 간에요. 앞으로 10년이 더 지나면 이 변화가 '완성' 될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몇 번의 겨울이 더 올 지도 모르죠)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건 앞으로 10년 동안 역시 변화의 방향성은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이건 꼭, 마치 기후변화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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