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VR 이머시브 연극'을 직접 만들어보고자 했던 이유는 현재 기술 수준에서 가장 '매혹적인 실감 콘텐츠 경험은 이머시브 연극 경험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감 콘텐츠 경험은 체험자들이 자유롭게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는 공간 경험일 때, 그리고 단지 움직이는 것만이 아니라 그 공간 속에서 접하는 사람, 사물과 상호작용 할 수 있을 때 매력적입니다. 특히 상호작용 중에서도 사람과 사람이 가상공간에서 몸짓과 표정, 목소리를 통해 대화를 직접 나눌 수 있을 때 그 매력이 배가 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AI가 완전하지 않은 지금,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처럼 체험자(플레이어)끼리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 한 가상현실 속 NPC가 체험자와 만족할만한 수준의 대화를 나누는 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제가 이머시브 연극을 보고 떠올린 영감은 바로 이 문제를 '배우'가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숙지하고 각기 다른 체험자들에 대한 즉흥적 대응을 위한 전문적 훈련을 받은 배우가 실감 콘텐츠 내에서 극을 이끌어 나간다면 체험자는 가장 이머시브(immersive)하면서도 인터랙티브(interactive)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거였죠.
5월 한 달 간 다섯 번의 정규 공연과 열 번 남짓 한 오픈 리허설 공연을 통해 체험자들의 반응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반응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VR 공간에서 배우들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포함한 상호작용을 해나가는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놀라운 경험으로 다가왔지만 다른 누군가에는 불편하고 때로는 정신없고 지루한 경험이 되기도 했습니다. 둘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VR 환경을 조작하는 기술적 숙련도의 차이였을까요? 혹은 출연배우에 대한 팬심의 차이였을까요? 아니면 각자 다른 기대치와 선입견 때문이었을까요?
한 가지 깨달은 건 이 뉴스레터의 제목이기도 한 두 개의 'i'(immersive와 interactive)와 실시간으로 소통가능한 배우의 존재 그 자체는 경험을 만들어내기 위한 기술적 조건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머시브한 환경, 인터랙티브한 요소들, 그리고 배우가 존재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어떤 경험, 즉 감동적이거나 놀랍거나 재미있는 경험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경험에 대한 만족감을 결정짓는 요소는 또 다른 'i'(intimacy, 친밀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친밀감'은 이머시브 연극에 대한 흔치 않은 연구서인 'Immersive Theaters(2013)'의 저자 조세핀 마촌(Josephine Machon)이 이머시브 연극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으로 내세운 것이기도 하죠. 이 단어는 그냥 단순한 정서적 친밀함이 아니라 성적인 관계가 연결된 친밀함을 표현하는 데 많이 쓰이는 단어기도 하죠.
이번 '웰컴 투 레스피트'를 포함한 대부분의 실감 콘텐츠 경험은 몸이 생각 이상으로 깊게 관여합니다. 입체적인 시각/청각 경험 외에도 이마를 누르는 헤드셋의 무게, 압력, 열기, 컨트롤러에서 전해지는 진동, 서 있을 때 또는 앉아 있을 때 느껴지는 피로감 등이 경험에 다 영향을 줍니다.
그런데 바로 이 요소들이 결합하여 가상현실에서 마주한 사람과 특별한 화학반응을 일으킬 때가 있습니다. 이머시브 한 환경에서 마주한 어떤 상대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하던 중(그게 대화든, 신체 접촉이든, 눈빛을 교환하는 것이든) 뭔가 딱 맞아 떨어지는, 뭔가 굉장히 자연스럽고, 마치 무언가 통하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드는 순간입니다. 이번 공연을 매회 지켜보면서 체험자와 배우 사이에, 바로 그 뭔가가 생겨나는 순간을 경험하는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했던 체험자는 나중에 예외 없이 공연 경험에 대해 높은 만족도를 표현하더군요.
결국 실감 콘텐츠 경험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일은 바로 이 '친밀감'을 생성해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친밀감'은 이머시브 환경을 제공한다고, 상호작용을 제공한다고 그리고 배우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해준다고 자동적으로 생성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앞으로의 고민은 이 '친밀감' 생성 매커니즘을 좀 더 이해해보고자 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될 것 같습니다. 그 고민의 여정을 ixi를 통해서도 공유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