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공식적인 2022년 하반기의 시작입니다. 간만에 날도 개고 희망찬 얘기를 꺼내고 싶은데 요즘 들려오는 소식들이 심상치 않습니다. 제 주변에서 1997년 IMF,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비스무레한 경제위기가 올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뉴스에서는 2022년 상반기 뉴욕 증시가 -20.6% 하락한 채로 마감됐는데, 이는 1970년 이후 52년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이라고 하더군요. IT 기업들의 주가는 같은 기간 훨씬 더 하락했는데 넷플릭스(-71%), 메타(-52%), 디즈니(-39%), 애플(-23%) 등 그 동안 선망의 대상이자 벤치마킹 모델로 삼던 회사들의 이름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ixi의 구독자들이 굳이 여기에서까지 '과연 경제위기는 올 것인가'에 대한 얘기를 들어야 하나 싶으시겠죠? 하지만 '경제위기가 온다면, XR 업계에는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는 어떠실까요? 사실 이 질문에도 제가 답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여러분들과 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해 볼 때는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 (우리가 아는) XR 산업은 경제위기를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XR은 201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각광 받기 시작했고, 가끔 'XR의 겨울'이라는 말이 나올 때에도 그건 대세 호황 국면에서 상대적으로 투자자들의 관심을 덜 받는다는 뜻이었지 불황을 겪는다는 뜻은 아니었거든요. 그럼 진짜 불황은 뭐가 다른 걸까요? 사실 감이 잘 오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가장 최근의 불황이었다는 2008년에는 어땠는지 떠올려 보기로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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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의 이미지는 이제는 이 영화로 기억되죠. <빅 쇼트> (이미지 출처: HBO Ma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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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을 발표하던 날, 저는 네덜란드에서 그 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영화산업의 디지털화'를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IBC라는 행사에 출장을 나가 있었거든요. 까마득한 과거입니다. 이때만 해도 한국에는 '아이폰'이 출시되지도 않았고 (아이폰은 한국에 2009년 11월에 처음 들어오게 됩니다), 전체 한국영화 중 단 10%만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되던 때였습니다. (지금은 필름으로 영화를 찍으면 그게 화제가 되는 시대죠)
그 즈음, 한국영화계에서는 '돈이 말랐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이듬해 초 2008년 한국영화 투자 수익률이 -43.5%였다고 발표되자 불과 1~2년 전 우회상장 등으로 영화판에 돈이 넘쳐 난다던 분위기는 말 그대로 거품처럼 날아가 버렸습니다. 미개봉 영화가 속출했고 수많은 영화제작사들이, 나름 큰 규모의 투자/배급사 마저도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때 한국영화산업이 붕괴하지는 않았습니다. 몇 년 후 회복세로 돌아선 한국영화는 2010년대 전체에 걸쳐 꾸준히 성장했고 코로나 직전인 2019년 정점을 찍었죠.
당시의 경제 위기를 통과해서 더욱 성장한 건 한국영화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기는 초창기에 불과하던 스마트폰 생태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 시기이기도 했고, 디즈니 같은 회사가 마블 코믹스를 인수(2009년)하여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의외로 '위기의 시기'는 길지 않았고(기껏해야 2~3년) 그 위기에서 벗어나는 시점에 급성장을 하게 되는 산업이, 그리고 회사들은 분명히 나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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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누구나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 "위기는 기회다"라는 겁니다. 진리죠. 경제 위기 국면에서 주가가 폭락하면 해당 기업을 사려는 입장에서는 가격이 싸지는 셈이니 훨씬 유리한 상황이 됩니다. 물론 그 기업이 경제가 회복됐을 때 반등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라는 전제 하에서요.
XR 산업은, 그리고 그에 속한 기업들은 향후빠르게 반등할 수 있는 속성을 가졌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2D) 영상 콘텐츠'의 위상이 정점인 시기는 바로 지금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화, 시리즈(드라마), 예능에 숏폼까지 영상 소비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시간을 많이 점유하고 있지만... 그게 언제까지일까요? 영상 소비가 줄어들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아 오는 게 XR이라면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상 뿐 아니라 스마트폰이라는 기기 자체도 정점에 달했다는 신호가 나오고 있습니다. 올해 스마트폰 출하량은 역성장을 기록할 전망이고 모바일 게임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도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난 10년 간의 IT 산업 성장이 스마트폰 생태계의 성장과 궤를 같이 한다고 봤을 때 그 성장이 정체되고, XR이 새로운 IT 생태계를 주도할 기기가 된다면 XR은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제위기는 호황 국면에서는 현상 유지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변화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2D 컴퓨팅 환경이 3D 컴퓨팅 환경으로 전환되는 것이 바로 그러한 변화일 수 있죠. 작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이어졌던 '메타버스 신드롬'은 어쩌면 그런 기대감의 반영이었을지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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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 가는 게 빠를까, XR 대중화가 빠를까? 문제는 기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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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슨 윌거스의 '화성 프로젝트'라는 책은 일반인들이 '대충 이 정도 과학기술 발전속도라면 2030년대 쯤이면 화성에 충분히 가겠지'라는 생각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일깨워주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우리가 가진 기술은 여전히 너무 부족하고 갈 길은 너무나 멀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들어 XR, 그리고 차세대 인터넷, 혹은 3D 컴퓨팅 환경의 도래라는 것도 인류가 화성에 가는 것만큼이나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니, 지금 인류의 과학기술 발전 속도가 얼마나 빠른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적당한 헤드셋이 나오는 것은 결국 시간문제다' '실사 수준의 실시간 렌더링 그래픽을 VR 헤드셋으로, 그것도 수백만 명이 동시접속하는 환경에서 무리 없이 경험하게 되는 것도 결국 시간문제다' 라구요. 근데 그건 '인류가 화성에 가는 건 결국 시간 문제다'라는 말과 같은 것이더군요. 결국 우리가 언젠가 화성에 가게 될 것처럼 XR 역시 차세대 인터넷 환경이 되겠지만, 그와 별개로 현재 우리가 가진 기술은 여전히 너무 부족하고 갈 길은 너무 멀다는 점에서요.
메타버스 신드롬 시기를 통과하면서 차세대 인터넷/컴퓨팅 환경이 도래한다면 그걸 어떻게 써야 할 지, 거기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 지 많은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장 그 기술을, 장비를 쥐어주기만 하면 되죠. 그리고 그 기술에, 그리고 그 기술의 활용에 투자할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다는 것도 확인 되었습니다. 경제 위기 국면에 그 투자자들은 머지 않은 미래에 그 기술이 활용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 싼 값에 그 기술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어찌 보면 XR에게 좋은 타이밍입니다. 기술이 준비되어 있다면 말이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음'을 뜻하는 한자어입니다.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이 '앞으로 반드시 올 것이다'를 반드시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XR이 여전히 '미래'의 기술이라면 이번 경제위기가 기회로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버티는 시간은 훨씬 힘들어질테지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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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의 마지막 날, XR 개발자들이 가장 많이 의존하는 회사 중 하나인 '유니티'가, 그리고 모바일 AR 어플리케이션을 대표하는 회사 '나이언틱'이 대규모 해고를 발표했습니다. 이들의 움직임이 '어떤 시작'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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