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의 ixi 담당자 최수영입니다. 지난 주말 저는 한국언론학회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준비한 '한류-테크놀로지-문화' 세션에 발표할 기회를 얻어 '스페이셜 미디어(Spatial Media)의 부상'이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을 소개드리게 되었습니다. 님도 ixi에서 'xR'이나 '이머시브 미디어', '3차원 온라인(인터넷)', '메타버스' 등의 표현은 들어봤어도 스페이셜 미디어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오늘 ixi는 언론학회 후기 겸 해서 어쩌다 제가 굳이 이런 생소한 용어를 꺼내들게 되었는지 간단히 얘기 드릴까 합니다.
왜 xR/이머시브 미디어가 아닌 '스페이셜 미디어'라는 말을 쓰고 싶었을까
저는 xR 기술의 상용화로 시작된 이번 변화가 우리들의 미디어 활용 역사에 있어 꽤나 거대하고도 매우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확신이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원근법적 회화>사진>동영상>CG에 이르는 일련의 시각매체 발전추이는 어떻게 3차원 현실을 2차원 평면에서 최대한 3차원처럼 표현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 참조) 그리고 그건 3차원 현실을 3차원으로 표현할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선택한 차선책이었구요. 하지만 이제 3차원 현실을 '평면화' 시키는 것이 아닌 3차원 그대로 표현하고 경험할 기술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평면화를 고민할 필요 없는 미디어의 등장'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xR'은 이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지칭하는 용어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경험을 가져오는 지 와닿게 하지는 못합니다. '이머시브'는 3차원적으로 둘러싸이는 미디어 경험을 표현해주기는 하지만 미디어 패러다임의 전환을 명확히 느끼게 해주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3면 스크린 등 평면 미디어로도 '이머시브'를 느끼게 해주는 장치들이 이미 존재하기에 혼란을 주기까지 합니다) '3차원 온라인(인터넷)'과 같은 용어는 개념적으로는 타당합니다만 '3차원'이라는 단어가 이미 오염되어 버렸다는 게 문제입니다. 평면 미디어에서 입체를 표현하는 방식에 이미 3차원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3D 모델링, 3D 애니메이션, 3D 게임 등)
그리하여 결국 '공간적인(Spatial)'이라는 단어만큼 적확한 건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단어를 특정 회사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쓰고 있다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이미 스페이셜 컴퓨팅(Spatial Computing)이라는 개념이 있기도 하고, '평면(Flat)'이라는 기존 미디어 패러다임의 본질과 가장 선명하게 대비되는 건 역시 '스페이셜'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xR이나 이머시브가 입에는 더 친숙한지라 ixi에서 스페이셜이라는 단어를 당장 전면적으로 쓰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좀 더 학술적인 자리나 명확한 개념정의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이 단어를 선택하는 일이 늘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구나 테마파크를 가질 수 있게 되는 시대"
동시에 '스페이셜 미디어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가져올 수 있는 명백한 변화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알기 쉬운 예시가 없을까 고민해봤습니다. 그러다 생각한 것이 방송국 vs. 테마파크라는 개념 대비였습니다. 모바일 폰을 통해 전 인류가 평면 스크린을 소유하게된 지금 시대를 '누구나 방송국을 가지게 된 시대'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모두가 '스페이셜 미디어'에 접근하고 소유하게 되는 시대란 무슨 의미일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에 대해 지금 떠오른 저의 결론은 '모두가 테마파크를 가지게 되는 시대'였습니다.
이제까지 '테마파크'는 진입장벽이 아주 높은 사업영역이었습니다. 웬만한 대기업도 함부로 투자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비용에, 부지개발을 둘러싼 각종 규제 등 제반환경 조성도 매우 복잡하죠. 스페이셜 미디어의 발전은 바로 이러한 테마파크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을 훨씬 싸고 쉽게 제공할 수 있는 쪽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모바일 시대, 기존 방송국 진입장벽이 무너짐에 따라 기회를 얻게된 사람들이 최고의 수혜자가 됐듯, 스페이셜 미디어 시대 역시 기존 테마파크 진입장벽이 무너짐으로써 발생하는 기회를 잡는 사람들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입니다. 이 기회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더 읽을거리] 현존감, 이머시브 스토리텔링 그리고 경험 디자인
한 달 전 켄트 바이는 본인이 스토리콘에서 진행했다는 키노트 자료를 유튜브로, 그리고 슬라이드로 공개했습니다. 매튜 볼의 '메타버스 프라이머'가 메타버스(=3차원 인터넷=스페이셜 미디어 환경)의 기술적, 산업적 개념들을 집대성했다면, 무려 179페이지에 달하는 이번 자료는 메타버스의 경험적 측면, 그리고 그런 경험을 제작하는 콘텐츠 기획 측면의 개념과 노하우들을 집대성한 자료입니다. 스페이셜 미디어 환경에서 어떤 콘텐츠를 만들 것인가, 어떤 경험을 디자인할 것이냐에 특히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켄트 바이가 그동안 축적된 지식과 경험들이 녹아있는 이 자료를 정독(혹은 정주행)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 사이 선댄스 영화제 측에서 올해는 뉴프론티어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2007년 시작된 뉴프론티어 프로그램은 가상훈련 엑스포나 미디어 아트 갤러리가 아닌 영화제에서 XR을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는 데 있어 그야말로 선구자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2012년 뉴프론티어에 소개된 <Hunger in LA>가 '오큘러스'(현 메타 리얼리티 랩)를 탄생시키는 산파 역할을 했다는 사실 또한 잘 알려져 있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XR 트렌드의 출발점이 문을 닫는 셈입니다.
사실 최근 몇 년 동안 선댄스 뉴프론티어는 정체성을 고심하는 흔적을 보였습니다. 메타 등 대기업들이 XR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하면서 대기업들의 (상업적인) xR 신작들을 뉴프론티어로 소개하는 게 맞나하는 고민을 하는 것 같았고 이에 따라 좀 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작품들을 소개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소위 상업적(?)인 XR 작품들을 소개하는 쇼케이스 창구는 '트라이베카'와 '베니스'로 옮겨가는 흐름이 나타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댄스가 아예 뉴프론티어를 멈추는 선택을 하게될 줄은 몰랐습니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번 중단 선언은 "폐지"가 아니라, 새로운 매체와 기술을 탐구하고, 그런 탐구를 진행하는 선구자(뉴프론티어)들을 좀 더 효과적으로 지원할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휴식의 성격이 강하다고 합니다. 휴식을 끝내고 돌아올 선댄스가 또 어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지 긍정의 마인드로 기다려볼까 합니다.
선댄스 뉴프론티어 'Hunger in LA' 시연 장면(2012, 이미지 출처 : Bradly Newman)
[GiiOii] 조은희, <포스트 음악극 시>(10/21~22, 서울)
지난 10월 6일부터 시작된 2022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 기어이가 참여한 '동시감각'이 포함되어 있다는 소식은 지난 9월 30일자 ixi에서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바로 '동시감각'이 공연이 열리는 날, 기어이 멤버가 참여한 또 다른 공연도 SPAF에서 진행되는데요. 바로 기어이와 인연이 깊은 조은희 작가의 '포스트 음악극 시'입니다. 본 공연은 2019년 초연된 작품으로 조은희 작가의 '포스트 음악극' 연작의 시초격이 되는 작품입니다. 지난 9월 열린 '포스트 음악극 몸'과 마찬가지로 기어이 이혜원 대표가 프로듀서를, 이명은님이 기획을 담당했습니다.